features조용한 횃불지기: 우야마 히로토는 어떻게 누자베스의 비전을 이어갔는가
2010년 2월, 프로듀서이자 DJ였던 세바 준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누자베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재즈와 힙합을 융합한 독보적인 사운드로 전 세계 음악 팬들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공백 속에서, 한 인물이 소리 없이 그 불꽃을 이어받았다. 바로 우야마 히로토였다.
우야마 히로토는 누자베스의 레이블인 하이다이브 레코딩스 소속 아티스트로, 두 사람은 단순한 동료 이상의 관계였다. 함께 음악을 만들고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며 깊은 유대를 쌓아온 그들의 관계는, 누자베스의 타계 이후 우야마가 그의 음악적 유산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소란 없이, 그러나 흔들림 없이**
누자베스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이들이 그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다. 일부는 그의 스타일을 노골적으로 모방했고, 일부는 그의 이름을 앞세워 주목을 받으려 했다. 우야마는 달랐다. 그는 헌사나 추모 앨범을 발표하는 대신, 자신만의 언어로 음악을 계속해나갔다. 플루트를 중심에 놓고, 재즈의 호흡과 힙합의 질감을 조화롭게 엮어가며, 누자베스가 사랑했던 그 감성적 공간을 조용히 확장해나갔다.
그의 앨범들, 특히 *Cello Conjunto*와 *Freedom of the Son*은 단순한 개인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을 통해 숨 쉬는 방식이었다. 누자베스의 음악이 도시의 밤과 고독한 사색을 담아냈다면, 우야마의 음악은 그 위에 자연의 빛과 영적인 고요함을 더했다. 계승이되, 복제가 아닌.
**하이다이브라는 공간**
우야마가 누자베스의 유산을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하이다이브 레코딩스라는 레이블의 존재가 컸다. 누자베스가 설립한 이 독립 레이블은 그의 사후에도 운영을 이어갔고, 우야마는 그 중심에서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상업적 성공보다 음악적 순수성을 우선시하는 레이블의 철학은, 두 아티스트가 공유했던 가치이기도 했다.
하이다이브는 단순한 음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누자베스가 꿈꿨던 음악적 이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으며, 우야마는 그 공간을 지키고 가꾸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서지 않더라도, 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누자베스의 정신은 계속될 수 있었다.
**로파이 붐과 누자베스의 재발견**
2010년대 중반, 인터넷을 중심으로 로파이 힙합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스트리밍 채널들은 누자베스의 음악을 재조명했고, 그의 이름은 새로운 세대의 귀에 닿았다. 이 흐름 속에서 우야마의 음악도 함께 재발견되었다. 누자베스를 처음 접한 젊은 리스너들이 자연스럽게 우야마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현상은 우야마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이어온 덕분에, 그 연결은 가능했다. 유행을 쫓지 않았기에, 유행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조용한 헌신의 의미**
우야마 히로토가 누자베스의 비전을 이어간 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추모의 형태였다. 그것은 말이 아닌 음악으로, 선언이 아닌 지속으로 이루어진 헌신이었다. 누자베스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그 방식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을 것이다.
음악의 세계에서 유산이란 종종 소란스럽게 선언된다. 그러나 진정한 계승은 때로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이루어진다. 우야마 히로토는 그 사실을 몸소 보여준 아티스트다. 그는 횃불을 높이 들어올리지 않았다. 다만, 꺼지지 않도록 지켰다.
누자베스를 잃은 후, 플루티스트 우야마 히로토는 그들이 함께 만들어온 사운드를 이어받아, 재즈와 힙합, 그리고 조용하지만 타협 없는 깊이를 뿌리로 한 솔로 커리어를 일궈나갔다.
2026년 5월 14일